고 김영환 장군 헌양행사 참석
관리자 2019.10.11 조회 10277
지난 10월 10일 27차 공사총동창회는 올해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고 김영환 장군의
현양식에 참석하였습니다.
본 행사는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여 유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고인의 업적을 다시 한번 기리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고 김영환 장군 (1921.1.8 ~ 1954.3.5) 약사
고(故) 김영환 장군은 1921년 1월 8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기 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관서대학에서 수학한 후,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자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8년 5월 소위로 임관하였다. 임관 이후에는 육군항공총감부와 육군항공기지사령부에서 근무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T-6 훈련기를 조종하여 해주, 개성, 동두천, 포천 등지로 출격하였다. 그는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저공으로 비행하며 폭탄과 수류탄을 적 전차와 차량에 투하하여 적군의 전진을 저지하였다. 또한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를 인수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9명의 동료와 함께 이다즈께 공군기지로 파견되었다. 기상상태 불량으로 충분한 비행 훈련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와 동료들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해야한다는 일념으로 7월 2일 F-51 전투기를 몰고 기지를 이륙하였다. 대한해협을 넘어 대구 동촌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한 그는 바로 다음날부터 F-51 전투기를 몰고 지리산과 가야산 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였다.
1951년 8월, 지리산지역 공비 소탕작전을 수행하던 중 전투경찰로부터 적이 숨어든 해인사를 폭격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해인사에는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이 소장되어있었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문화재의 소실을 우려하였다. 민족의 얼과 같은 문화재를 한번 잃으면 복구할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폭격대신 기총사격으로 공비들을 쫓아내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었다. 정부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보존에 기여한 그의 공적을 기려 2010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강릉전진기지사령관으로서 우리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을 지휘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 비행훈장, 미 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고(故) 김영환 장군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빨간 마후라’를 최초로 착용하여 이를 제도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휴전 이후에도 전투비행단 운영체계 수립과 전투조종사 양성 등 공군 전력 향상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4년 3월 5일 임무 수행 중 기상 악화로 항공기가 실종되어 34세를 일기로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