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 70주년 기념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 참석
관리자 2019.11.22 조회 13951
지난 11월 19일 27차 공사총동창회 임원진은 공군 창군 70주년 기념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공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이날 제막식에는 6.25전쟁 출격조종사,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 최용덕 장군 약사 >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은 1898년 서울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청년단,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고, 1924년 보정항공학교에 입교하여 조종사가 되었다. 1927년 국민혁명군 항공대에 합류한 이후, 중화민국 공군의 고급장교로서 중화민국 공군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40년 광복군 창설 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거쳐 1944년 참모처장을 역임했다. 특히, 1943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군설계위원회 조직을 주도하여 공군 창군의 기원을 이루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국내 항공단체들을 통합하여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했다. 이후, 다양한 출신의 국내 항공인의 힘을 하나로 모아 공군을 창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특히, 미군정에 공군 창군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1948년 4월, 50세의 나이에 항공부대 창설을 위해 미군정이 제시한 요구조건에 따라 백의종군하여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용덕 장군은 초대 국방부차관에 임명되었다. 국방부차관으로 재직 시, 국군조직법 제정에 관여하며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최용덕 장군의 일생 숙원이었던 대한민국 공군 창군이 이뤄졌다.
이후, 최용덕 장군은 1950년 공군에 복귀하여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1956년 중장으로 전역했다. 1960년 체신부장관, 1961년 주 중화민국 대사에 임명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최용덕 장군은 “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69년 8월 15일,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