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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결단 - F-4 팬텀기 조국하늘을 날다[1]

배기준 2015.12.06 조회 1236

 

       대통령의 결단 - F-4 팬텀기 조국하늘을 날다 [1]

 

                                       

        며칠 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인근

      '박정희대통령 기념 · 도서관' 찾았다.

 

      현역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세번 악수하였다.

 

      1964년도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풋내기 군인으로 첫 발을

      디디는 날, 공군소위들의 장도를 빌어 주었다.                                                                                        

     

      1970년대 중반 추석전 전투비행단을 불시 방문하여 조종사식당

      에서 동태찌게로 가난한 만찬을 하면서 동해에서 석유가 나오면

      국민 자가용 시대가 열린다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할 때 꿈같은

      이야기지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소령때 어느 겨울, 전투비행단 비상대기실에서 수십대의

      전투기가 동시에 발진하는 항공작전시범훈련에 참가하는 조종사

      들에게 격려와 함께 손을 잡는 순간, 저절로 우러 나오는 벅찬 

      감정은 훈련이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애국심과 충성심

      이었다.

     

      지나간 추억에 빠져든 사이 마을버스는 목적지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정치의 요체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 했다. 대통령은 이 양대

      국가대사(國家大事)에 온몸과 마음을 바쳐 한국근대화에 초석을

      놓고 기적을 일구어 국가 최고지도자이자 군 최고통수권자였다. 

      대통령이 걸어 온 발자취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 그 자체

      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불굴의 위대한 정신이 강물이 되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전시실을 들어서자 우측벽에 도별 주요 업적이 분야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1969 자주국방 9.23 공군 F-4 팬텀기 비행부대 창설'

      이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비록  짧은 한 줄의 역사가 기록

      되어 있지만 대통령의 긴 고뇌에 찬 결단이 서려 있는 그 과정의 뒷

      이야기(behind story)일반인들이 잘 모른다.

 

       그 당시 안보환경은 잦은 북한 도발로 안개속 처럼 불확실하여

       불안정하였다. 한 해 전 1968 1.21 청와대 기습사건과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이 터지고 거기에 미군과 한국군이 파병한 월남전이 한창

       이었다. 

* 지면부족으로 대통령의 결단 - F-4 팬텀기 조국 하늘을 날다 [2]로 이어집니다.

  • 배기준 2015/12/10 04:25:15
    6.25 직후 <10인의 F-51무스탕> 전설같은 공군 역사는 잘 알고 있으나 1969 년 <16인의 F-4 팬텀>이야기는 잘 모른다.
    전방석 진치범, 김인기, 강신구, 이재우, 김재수, 이원순, 한정근, 박근태, 후방석 전춘우, 이성복, 강상원, 서진태, 안창명, 박재현, 임병배, 박종권
    도미 교육 훈련 후 Ferry는 Air Refueling 으로 태평양을 날아왔다. <팬텀공군>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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