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팁 (TIP)
박창용
2023.04.03
조회 75066
이상한 팁 (TIP)
(장면A 포장마차 앞)
젊은 여자가 딸아이 손을 잡고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 앞에 왔다. 멋진 밍크코트를 입었는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반들반들하게 빛이 나는 것이 꽤 비싸 보였다.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발라서 마치 원숭이 똥구멍처럼 빨갛게 보였다.
“얘는 왜 이런 걸 사달라고 하는 거야?”
“붕어빵이 맛있단 말이야.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다놓은 고급 빵과 과자가 있잖아?”
“난 그것보다 이것이 더 맛있어. 친구들도 붕어빵을 좋아해.”
“아저씨, 붕어빵 열 개만 주세요. 값이 얼마죠?”
“오천 원입니다.”
“붕어빵이 왜 이렇게 비싸요? 두 개만 더 주세요.”
“두개를 더 주면 그럼 남는 게 없어요.”
“싫으면 팔지 마세요.”
젊은 여자는 쌀쌀맞게 말하면서 명품 핸드백에서 오천 원을 꺼내 주었다. 긴 손톱에 보라색 매니큐어를 잔뜩 바른 손으로 기어코 두 개를 더 가져갔다. 붕어빵 한 개 팔아서 얼마가 남을까? 그걸 깎자고 하니 지켜보는 사람도 난감하다. 어쩐지 고결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조금 양보하여 어려운 사람의 힘든 삶에 작은 도움을 준다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인생을 신나게 폼 잡으며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으나 좀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복이 되어 돌아오리라.
(장면B 고급 갈비 집 카운터)
고급 레스토랑에서 귀부인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과 색조 화장품으로 꾸민 얼굴모습은 화려하여 돈 있는 여자들처럼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며 갈비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너희들 만나면 수다를 떨면서 맘껏 웃을 수 있다니까.”
“이집 갈비는 먹을수록 맛이 괜찮네.”
“갈비 먹고 싶으면 또 연락해.”
두 시간쯤 지난 후 한 여자가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딸아이에게 붕어빵을 사주던 그 여자였다.
“사모님, 오늘 너무 예쁘세요.”
“나 그렇게 보였어? 괜히 하는 말은 아니지?”
“사모님, 제가 어떻게 없는 말을 하겠어요. 사모님은 언제나 귀티가 나는 미인이세요. 손톱 매니큐어도 고급스럽고 멋져요.”
“미스 김은 센스가 있단 말이야. 오늘 얼마지?”
“사모님, 292,000원이에요. 갈비 맛은 사모님 입에 맞으셨어요?”
“괜찮았어. 이걸로 결재해. 나머지는 넣어둬.”
“사모님은 손도 크시지, 사모님 고마워요. 잘 쓸게요.”
젊은 여자는 고급 핸드백에서 오만 원짜리 신권 6장을 꺼내 미스 김에게 주었다. 미스 김의 얼굴에 홍조가 일면서 입이 째질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말만 골라하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젊은 여자는 사모님이라 부르며 예쁘다는 칭찬과 아양에 거액의 팁을 주면서 폼을 잡았다.
팁의 사전적인 뜻은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위로와 고마움의 뜻으로 일정한 대금 이외에 더 주는 돈’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요즘은 폭넓게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팁이 이상해져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작은 액수라도 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외면하고, 주지 않아도 될 사람에겐 크게 베푼다. 팁의 문화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팁도 사람을 차별하여 조금 헷갈린다. 어느새 팁이 부와 권위의 상징처럼 되고 과시용으로 변해가고 있어 때로는 속이 상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인간은 곧잘 신분이나, 직업, 외모, 재산 등으로 사람의 귀천을 판단하고 심지어 생김새나 옷차림으로 차별을 하고 깔보며 멸시한다. 가난한 사람한테 물건을 살 때는 불친절하고 깎으려고 하면서, 비싼 물건을 살 때는 팁까지 얹어주고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팁으로 사람을 지배하려하지 말고 고결한 행동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인다면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환심을 사기위해서 관심을 갖고 신경 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 순간이 지나면 금세 잊어버릴 것을 무슨 큰일이라도 이룬 것처럼 우쭐댄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품격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인간이 지닌 품격은 타고난 기본 바탕이어서 언행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는데 고결한 사람은 인품과 품격을 두루 갖춰서 행동이 밝고 너그럽다.
인간에게 이 세상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또한 나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자비, 자선, 고결, 사랑, 희생, 겸손, 배려, 품격, 친절, 나눔, 봉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현찰, 부와 권력, 쾌락, 사치, 허례허식, 허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질을 주장하는 사람과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차이지만 세상은 물질을 더 숭상하는 것 같다.
자비심은 부처님의 은근한 미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남자의 고급 지갑과 여자의 명품 핸드백 속에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도 간직하고 있다. 자비심은 감춰진 보물과 같아서 어느 곳에 두어도 빛을 잃지 않으나 다만 쓰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표시가 나지 않는다. 진정한 자비란 필요한 곳에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이 자비이고 자선이다. 그것을 꺼내어 힘든 사람에게 나누고 베풀어 줄 때 비로소 자비로서의 가치가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양보가 자신의 희생보다 더 가치 있다는 믿음의 실천은 책임감 이상의 인간사랑의 정신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빛나게 만든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눈과 마음으로 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결(高潔)은 성품이 고상하고 순결함을 뜻한다. 몸속에 간직하고 있는 보물과 같으나 그걸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자비심과 같이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찬란한 빛을 발한다. 고결함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빛을 낼 수 있으며 자선과 같이 제대로 쓸 줄 알아야 가치가 있다. 고결한 행동은 아무나 흉내 낼 수가 없으며 고결한 인품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희생을 앞세워 실천할 때 빛이 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역사 속에는 참으로 고결한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고결함의 모범을 보여준 사례가 많다.
고결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다가오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남을 속이거나 비겁한 잔꾀를 쓰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절제된 모습으로 행동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양보한다. 짐승만도 못한 삶을 비굴하게 살 바에야 품격 있게 양심을 지키겠다며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가 사회의 공동선이나 고결함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며 남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런 사람들의 고결한 자기희생 이야기를 접하면 벅찬 감동의 눈물이 사정없이 솟구쳐 흐른다. 죽음도 먼저 받아드려서 실천한 숭고한 희생정신이야말로 고결함의 극치라 할 것이다.
순수하고 순진 무궁한 고결함을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양심과 영혼을 팔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비겁하게도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은 살면서 때로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고결한 행동을 실천하며 살아야한다. 고결함은 홀로 존재하지 않아 외롭지 않다. 고결함은 태양처럼 빛을 내는데 신비스럽게도 쓸수록 밝은 빛을 더하고 가치가 올라가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고결함을 지닌 사람은 천성으로 태어난 것인지 언제나 아름다운 향기가 솟아나고, 몸속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것처럼 곱고 밝은 빛을 발하여 영원히 후세의 귀감이 된다.
*** 이 작품은 군사저널지 2023년 4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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