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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국민회와 애국지사 김종림 (동문회 미서부지회)

심인태 2023.11.05 조회 63805

공사동문회(미서부지회)는 11.2 송년모임을 의미있게 보내고자 공군전우회와 함께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서 하였스며, 이민역사 설명도 듣고 '독립운동가 김종림의 생애'를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1920년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지역에서 시작된 비행학교는 오늘날 공군의 상징적 기원과 뿌리라고
장병들에게 교육 하고 있다.
항일 항공독립운동을 한 도산 안창호. 임시정부 노백린 군무총장. 비행사 박희성. 이용근 등은 알려져
있스나, 비행학교 설립을 가능케 전폭적 재정지원을 한 애국지사 '김종림'은  그의 명성에 비해 잘 알려
지지 않았다. 간략히 소개해 본다.

1905년 한국이 을사늑약 으로 주권을 상실하자 미주 한인들은 본격적인 국권 회복운동을 시작 하였스며,
그 중심에는미주 독립운동의 최고단체인 ‘대한인 국민회’ 가 있었다.
‘대한인국민회’는 일제치하 미주 애국지사들이 세운 임시정부이다. ‘국민회’는 1909년 2월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박용만,이승만 등에 의해 창설된 미국내 최대의 독립운동 단체 였스며,
현재는 기념재단이 출범후 선조들의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차세대에 알리며 교육에
힘쓰고 있다( 동문들의 LA방문시 꼭 가볼만한 역사의 현장 중 하나로 추천 한다)

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19-1973.1.26) :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 국민회,북미지방동지회 등 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다.
하와이 이민 후 1907.1.2 알라메다 선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 철도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공립협회에 입회 하였고, 캘리포니아의 바실리아, 프레즈노,리들리 등에서도 노동자로
일하였다. 1908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슨 저격 의거가 일어나자 직접 공립신보 인쇄원이 되어
동포 사회에 소식을 전하였스며, 190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후, 국민회 에서 활동 하였다.  
1912추정 프린스톤 에서 벼농사를 처음 시작하여 윌로우스 지역으로 확대하며 1914-1916 연속 풍년과
1차세계대전의 전쟁 특수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자, 실업가 로 탄탄한 기반을 닦게 되면서 한인사회 에서
‘쌀의 대왕’으로 불리우며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 명성을 얻었스며 지역사회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1920 가을 추수를 앞두고 캘리포니아에 대홍수로  북미실업주식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을 당시(1921.10)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최진하가 윌로우시 동포사회를 위로 방문 시 김종림 자택 방문기에 의하면
3,300에이커에 한인 15명이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1920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하고 비행대 편성의 방침을 세우자  이 소식에
김종림은 1920년초 노백린 임시정부 군무총장을 만나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자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결정을 내린다. 공군 양성계획에 흔쾌히 동참했고 약 2만달러의 지원금을 내며
또한 매달 3천달러씩 지원해서 교사의 월급지원 및 운영비를 냈다. 1920.6 에는 실제로 비행기 2대를 구입
하고 조종학생들 에게 실습 훈련 했다(당시 윌로우스 데일리저널 기록이 있슴) . 하지만 이해 100년 만의
폭우로 인해서 쌀농사가 실패하자 재정 지원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비행학교는 결국 문을 닫는다.

짧은기간 이었지만 미주 한인사회 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가장 획기적인 발상과 실천을 한 것이었다
당시 항공력을 키워 일본을 공격 한다는 것이 비현실적 이긴 했지만, 조국독립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은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기억 된다.
캘리포니아 윌로우스비행학교 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도산 안창호 선생과 노백린 장군. 애국지사
김종림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대담하고 진취적인 조선 청년들의 기상에
우리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특이할 만한 점은 김종림은 대부분 단체 활동 에서 재정을 담당 했스며, 좀처럼 인적 이동이 없는 안창호계와
이승만계의 양쪽 진영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이다.
그의 삶은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자주권 회복이 목표 였고,어떤 경우도 포기 하지 않고 행동함 으로서
동포사회에 희망을 주는 삶 이었다.  
김종림은  비행학교 설립에 전폭적 재정지원, 이승만 안창호등 독립운동가 등에 독립자금 지원, 상해임시정부
설립시 거액의 재정지원 등을 하였스며 그에 대 좀더 적극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11.4.2023
공사총동창회 미서부지회 심 인태

(기타자료)
역사의 현장2. LA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Reedley시에 한인 이민역사 추모각 공원에는 1/4축소 독립문과
도산 안창호 이승만 김종림 등 13인의 애국지사 기념각이 있스며 인근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렀던 버지스
호텔이 아직도 운되고 있고, 190여기의 한인 묘지(리들리/145기, 다뉴바/45기)가 있어 외로운 생을 살아간 선조
들의 마지막 흔적도 보며 느낄 수 있다. 
인근 40분 거리 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에 아름다운 ‘세코야 킹스캐년 국립공원’ 이 있어  여행시 한인역사의
현장으로 추천하며, 당시 한인 이민자 들이 만들었던 끝없이 펼쳐진 과실 농사 지역을 보며 힘들었던 선조들의
삶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이다.
(김종림 생애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군전우회 웹사이트 기고글 참조 바랍니다)







 
  • 심인태 2023/11/08 23:50:06
    중앙일보
    한인 독립운동가 김종림 재평가 필요하다 2023.11.06 https://news.koreadaily.com/2023/11/05/society/opinion/20231105180508288.html 2023년은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이자, 한국 공군의 상징적 기원이 되는 캘리포니아 소재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 103주년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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