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도의 추억(여행기)
박창용
2024.09.12
조회 31944
(여행기)
비금도(飛禽島)의 추억
이름도 아름답고 우아한 새의 형상을 닮아서 아름다운 섬 비금도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내가 서해바다의 외로운 섬 비금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세출의 바둑기사 이 세돌 선수가 세계 바둑계의 정상에 오른 후 그의 고향이 비금도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부터이다. 지금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 성율 동기 삼형제가 비금도 출신이며, 신안군에서 삼형제를 기리는 ‘별들의 정원’을 조성하여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이제는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지역발전에도 큰 공헌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색의 계절에 비금도를 여행하면서 예쁘고 아담하게 꾸며진 ‘별들의 정원’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생활의 기쁨이었다. 작은 섬 비금도에서는 인재가 참 많이 배출된 것 같다.
여행은 즐겁다.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목포에서 출항한 여객선이 망망대해의 푸른 파도를 헤치고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섬 홍도로 향했다.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우며 가을볕이 풍성하게 쏟아지는 복된 날이었다. 눈부신 햇살은 보석보다도 밝게 빛나고 부서지는 파도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며 흰빛을 더했다. 나는 문득 한 마리의 날쌘 고래처럼 푸른 파도를 헤치고 힘차게 달려가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올여름 살인적인 무더위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뱃전에 부딪치는 푸른 파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행복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일찍 ‘행복’이란 수필에서 ‘행복이란 구수한 된장을 풀어 정성껏 끓인 배추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것’이라 쓴바 있다. 행복이 흔한 배추국을 먹으면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리라. 행복은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만족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람이 누리는 감정이다. 행복은 무엇보다도 욕심을 줄여야 찾아온다. 욕심을 줄이고 불같이 타오르는 욕망을 억제하면서 감사하고 만족할 때 행복을 가까이서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청정한 마음으로 어느 누구도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단순하고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런데 행복은 욕심과 불만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푸른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가슴이 설레며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였다면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나이가 들면 몸은 무거워지고 행동은 느려지며, 몸의 기능이 떨어져서 힘들고 불편한 곳들이 늘어난다. 웃을 일은 없어지고 재미있는 일과 즐거움은 사라지는데 아픈 곳은 늘어나면서 활력이 떨어져나간다. 그런데 80고개를 바라보는 멋진 노익장들이 건강을 지키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친구들이 모여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행복이란 혼자서 누릴 때보다 작은 것이라도 여럿이 함께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들에게 이런 기쁜 날들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인생은 남이 보기에 화려하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 가득 찬 욕심과 불만을 버리지 못하고,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면 어리석은 억지에 불과하다. 행복이 뭐 별거든가? 행복은 욕심을 버린 만큼 채워지는 것, 욕심을 비운 자리에 행복으로 채우면 신기하게도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행복은 스스로 느끼고 만들면서 즐기는 만큼 행복하게 된다.
부서지는 파도의 물결은 아름답고 푸른 바다는 볼수록 행복감을 더해주었다. 한 무리의 하얀 갈매기 떼들이 우리를 환영하듯 뱃전을 오가며 날라 다녔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를 감상하면서 시원한 바닷바람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2시간 30여분의 항해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섬 홍도에 도착하여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홍도에서 보는 밤하늘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밤하늘에 떠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영롱한 별빛이 환상처럼 다가왔다.
“아 저 아름다운 별빛을 홍도에서 보는구나.”
어릴 적 보고는 그 동안 잊고 살면서 꿈속에서나 그려보았던 영롱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빛이 예전에 고향에서 보던 것처럼 황홀하고 찬란했다. 저 아름다운 별빛을 오랫동안 잊고서 살아왔다니 무심한 세월이 안타까워서 별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는 별빛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고서 살아간다. 밤거리를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문명의 이기가 주는 가로등 때문인데, 밤하늘의 신비로움을 볼 수 없게 만들어서 한편으론 아름다움을 놓치면서 살아간다. 오늘밤 아름다운 별빛을 마음껏 보면서 자연이 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웅장한 바위가 조화롭고 멋이 있어서 장관인 홍도는 섬 전체가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으로 솟아있고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볼수록 신기하고 놀라웠다. 특히 탄성을 자아내는 잘 생긴 소나무들이 정성들여 다듬어진 하나의 멋진 분재처럼 보여서 섬전체가 잘 가꾸어진 분재의 정원처럼 보였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금방 사라지는데 홍도의 자연경관은 오래도록 자주보아도 변함이 없을 것 같고, 아기자기한 푸른 소나무들의 멋진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토록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름도 아름다운 섬 그리던 비금도에서 머문 시간은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드넓은 백사장, 보기만 하여도 평화롭고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넓은 명사십리 백사장의 하얀 모래밭을 한없이 걷고 싶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걷고 뛰면서 달리고 싶었다. 아무리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백사장은 비단길보다도 부드럽고 어릴 적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정겨울 것 같았다. 원시의 감미롭고 여유로운 촉감을 느끼면서 자연이 주는 진정한 멋과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음과 불평과 갈등이 멈춰진 그곳에서 잠시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는데 아쉽게도 자동차 안에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하얀 모래밭을 자유롭게 걸어보고 싶은 기대가 컸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소중한 비금도의 추억으로 간직하려한다.
아름다운 섬 홍도와 비금도에서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이번 여행은 쉽게 할 수 없는 코스인데 이 강욱 동기의 통 큰 재정적 지원으로 즐겁게 하였다. 그 동안 강욱이는 친구들을 위하여 수천만 원의 자비를 써가며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여 왔는데, 속 좁은 인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 기분 좋은 말은 한마디만 들어도 하루가 즐겁듯이 곁에만 있어도 향기 나는 사람이 있다. 강욱 친구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마음을 지닌 걸출한 인물을 동기생으로 두어서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홍복이다. 강욱이는 참 멋지고 한없이 마음이 따뜻한 고마운 친구다. 이번에 또다시 뜻 깊은 홍도와 비금도 여행을 추진하여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길에서 주식형제는 물론 급난지붕의 진실한 벗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눔과 베풂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크고 따뜻한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것은 화려한 생색이나 차디찬 지성이 아니라 오직 따뜻하고 선한 마음뿐이다. 신께서는 인간의 행동을 일일이 기억하고 계시며 이에 합당한 복을 주신다고 했다. 강욱 친구는 그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니 그 동안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 이상으로 큰 축복을 받을 것이며, 지금도 큰 복을 받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거듭 감사를 드리며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남은 인생에서 얼마나 자주 힘든 사람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고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친구의 축하할 일에 축하도 못하고, 슬퍼할 일에 위로조차 못하는 작고 이기적인 사람도 있지만, 인간은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하며 자신이 받은 감사한 마음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가야 한다. 남에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와 선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도 변치 않는 덕망으로 쌓여서 자신의 운명을 복되게 바꾸어준다. 우리는 향기로운 인간의 냄새를 낼 수 있도록 스스로 덕을 쌓으며 고결한 삶을 살아야겠다. 여행을 하면서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여도 믿지 못하는 현실에서 때로는 보지 못한 것도 사랑할 수 있는 고운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그리고 올여름 찌는 듯 무더위를 견뎌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비록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어도 오랜 친구들이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면서 함께한 즐거운 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풍성한 가을이 주는 축복이 넘쳐나기를 기원한다.
2024, 9, 11. 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