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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향기

박창용 2025.05.12 조회 1126

                                                                                   인생의 향기

 고상한씨가 직장을 퇴직할 무렵 그 동안 사용하던 손가방도 세월 따라 낡아서 볼품이 없어보였다. 착한 아들은 아버지의 퇴직 기념으로 이름이 꽤 알려진 고급 악어가방을 구입하여 선물로 드렸다. 악어가방 안에는 작은 돈지갑이 세트로 들어있었지만 그동안 사용하던 지갑이 멀쩡하여 아예 쓸 일이 없었다. 고상한씨는 효심 있는 아들의 따뜻한 마음 씀으로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날 때 가졌던 인간적인 서운한 감정을 다소 덜어주었다. 고상한씨는 돈지갑을 그냥 집에 두고 묵히는 게 아까운지라 현직에 근무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후배 진실한 씨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편 고상한 씨로부터 고급 돈지갑을 선물 받은 진실한 씨는 지갑 속에 신권 십만 원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평소 마음 씀이 후덕한 선배님이 후배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비싼 지갑을 선물하면서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라고 특별히 돈까지 넣어서 배려한 것으로 짐작했다.
참 자상하시기도 하지, 역시 선배님은 본받을 점이 많은 멋진 분이야.”
선행은 알고 하던 모르고 하던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전해주면서 복을 받게 된다. 진실한 씨는 놀라운 선물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존경의 마음이 더했다.
 
 아카시아 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고상한씨는 홀로 산행을 떠났다. 산길을 걷는 여유로움과 새하얀 꽃잎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를 즐기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산속의 고요를 깨트리며 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아끼는 후배 진실한 씨의 전화였다.
선배님, 항상 바쁘게 근무하시다가 퇴직을 하셨으니 좀 답답하시죠?”
나는 백수가 즐겁게 사는 법을 연구하며 잘 지내고 있다네. 자네야 말로 회사 일을 하느라 수고가 많겠구먼.”
유머는 여전하시군요? 모처럼 선배님께 용돈을 조금 드리고 싶은데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세요.”
이 사람아, 급한 성격 좀 줄이시게. 은행계좌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요즘 제게 좋은 일이 생겼거든요. 선배님 생신이 곧 돌아오시죠? 생신 축하도 드릴 겸 용돈을 조금 나눠드리고 싶어서 그러니 빨리 불러주세요.”
허 이사람 보게. 아니 눈먼 복권이라도 당첨되었는가? 자네에게 찾아온 행운이라면 두고두고 아껴서 사용하시게. 자네의 마음만 고맙게 받겠네.”
제 성의를 무시하면 섭섭합니다.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식사라도 대접하겠지만 멀리 떨어져있으니 대신 축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고상한씨는 갑자기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뜬금없는 전화에 당황했으나 산행중이라 기억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고는 사양했다. 그 후 거듭되는 후배의 요청에 계좌번호를 알려주었고, 그는 뜻밖에 20만원의 거금을 받아서 보내준 이유도 모른 체 요긴하게 썼다. 이번에는 용돈을 받은 고상한 씨의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괜찮은 후배를 두었다고 생각했다. 돈은 돌고 돌아 돈이라고 부른다는 우수개소리가 있지만, 두 사람의 좋은 인간관계를 볼 수 있어 시샘이 난다. 착한 일은 그렇게 소문 없이 이뤄지더니 서로에게 삶의 기쁨을 나눠주면서 깊은 인간적인 정을 쌓게 만들었다. 고상한 씨와 진실한 씨는 세월은 흘러도 아카시아 나무 꽃만큼 풍성하고 향기로운 깊은 우의를 다지면서 인간관계의 폭은 깊어져갔다.
 
 어느 날 고상한 씨는 아들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지갑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아버지, 제가 전에 사드렸던 악어가방은 지금도 사용하고 다니세요? 혹시 낡았으면 새것으로 다시 사드릴까요?”
직장을 퇴직하고 나니까 가방을 들고 다닐 일이 별로 없더구나. 지난번에 사준 가방은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어.”
그럼 작은 돈지갑은 지금도 쓰고 계세요? 사용하는데 불편은 없으세요?”
사실은 돈지갑은 내가 사용하던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줬어.”
그러셨어요? 누구한테 드렸는데요? 혹시 그때 지갑 안을 보셨어요?”
빈지갑인 줄 알고 확인하지 않고 줬는데 지갑 속에 뭐가 들어있었냐?”
새 지갑 속에 신권을 넣어서 드리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 제가 신권으로 십만 원을 넣어서 드렸거든요. 그럼 지갑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모르고 계셨군요?”
아 그랬었구나?”
 봄날의 햇살이 상큼하고 풍요롭다. 갑자기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아카시아 꽃처럼 맑은 인간의 향기를 풍기며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풍성한 인간의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멀리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적셔주며 우리를 살맛나게 해준다.
인간은 마음속에 순수함과 진실함을 지니고 살아가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고 베풀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간다. 고상한씨는 뒤늦게 손가방에 얽힌 비밀과, 배려심이 주는 따뜻함과, 후배 진실한 씨가 보내준 20만원의 용돈의 내막을 알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세상사 모르고 지나는 것이 많은데 편할 때도 있다. 
 ‘신께서는 인간의 선행을 일일이 기억하고 계시며 세상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신다.’ 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후덕한 사람들은 복을 받는가보다. 가진 것은 작아도 인정이 있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남에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와 선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도 변치 않는 덕망으로 쌓여간다. 우리는 향기로운 인간의 냄새를 낼 수 있도록 스스로 덕을 쌓으며 고결한 삶을 살아야한다. 착한 마음은 마법 같은 힘이 있다더니 선의는 선의를 낳고, 자꾸만 커져간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한 것이다. 착한 배려심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카시아 나무 꽃만큼 향기롭고 풍요롭게 해주었다. 봄날의 햇살이 따뜻하고 상큼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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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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