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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에서의 깨달음

금기연 2010.08.24 조회 499

설악에서의 깨달음

 

  볼수록 좋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가슴이 뛴다. 설악에서도 전망이 최고인 신선대에서 공룡능선의 일출을 찍은 다음의 일이다. 그때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그 순간의 감동을 되새긴다. 동해에서 막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해맑게 빛나는 거대한 암봉군과 짙푸른 숲, 거기에 신비감을 더해주는 구름까지 어우러진 멋진 광경이다.

 

  설악이 그리 가깝거나 만만한 곳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공룡능선은 오르내림이 마치 공룡의 등처럼 심하다고 하여 이름까지 공룡이라 하지 않는가. 어느 쪽으로 가건 다섯 시간이 소요되고, 능선을 들고나는 구간까지 합하면 최소 8시간 이상이 걸리니 함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쪽 끝은 설악의 깊숙한 곳이라 하룻밤은 필히 산장에서 자야 한다.

 

  설악산의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승용차로 설악까지 오가는 일은 보통이 아니다. 특히 고된 산행을 마친 뒤의 운전은 상당한 부담이다. 이번엔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까지 두 시간 여, 설악산 입구의 소공원까지는 시내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넉넉잡아 서울에서 세 시간이면 설악산 입구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경춘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고 국도가 좋아진 덕분이다.

 

  첫날은 다섯 시간을 걸어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한 다음 신선대로 가서 일몰을, 다음날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벼르고 벼르던 일출을 찍었다. 날씨도 그만이다. 들뜬 기분에 이제껏 가보지 못한 소청-봉정암-오세암 길을 걸어본다는 것이 그만 열 시간이나 걸렸다. 공룡능선을 가려면 힘을 아껴 놓아야 하는데….

  눈을 뜨니 다리가 심상치 않다. 이틀 연거푸 너무 많이 걸은 탓이다. 공룡능선을 갈 수 있을까? 걱정에 앞서 상황을 가늠해본다. 가까운 천불동으로 가더라도 최소한 네 시간. 어차피 최선의 몸 상태가 아니라면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공룡능선을 택하되 아주 천천히 걷기로 한다.

 

  공룡능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 저 위에 올라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쉬었다. 쉬어야 할 ‘저 위’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이미 체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증거다. 그런 상태로 거기까지 가면 체력이 바닥까지 내려간다. 미리 쉬고 나면 체력이 유지되어 더 빠르고 쉬운 산행이 가능해진다. 많은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걸었다. 사흘 동안 28시간을 걸었건만 후유증도 거의 없는,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속도전을 할 때는 잘 몰랐던, 설악의 봉우리와 능선들이 명확하게 각인되어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공룡능선이 이처럼 가까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인데도 멀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고작 일 년에 한두 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고 지냈다. 방법을 달리 하니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었는데 자칫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고 포기할 뻔하였다.

 

  어찌 공룡능선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를 이루는 길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수로 최적의 상황에서 벗어났더라도 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편견이나 무지로 인해 불가능한 것처럼 느끼고, 그래서 알아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 볼 일이다. 나이를 탓하거나 체력을 핑계될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노력하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금기연 2010/08/24 16:22:48
    오늘 국방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제가 보낸 원문 중에서 일부가 빠져 앞뒤가 잘 통하지 않기에 원문을 첨부하였습니다.
등록
2010.08.20
201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