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의 새로운 전망대
금기연 2010.09.24 조회 576
공룡능선의 새로운 전망대
설악산에 갈 때마다 악기상으로 고생한다는 동기와 내기를 했다. 한 번은 겨울에 올랐다가 엄청난 눈으로 며칠을 갇혔던 적도 있다는 친구. 몇 번이나 설악을 다녀왔지만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공룡능선으로 안내하면서 내가 갈 때는 항상 날씨가 좋으니 누구의 기가 센지 보자고 했다.
동기의 기운도 만만치가 않았다. 산장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식사준비를 할 때부터 빗방울을 뿌리더니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드디어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바로 전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 흐르는 땀을 씻어내기에 바빴거늘.
천불동 계곡의 막바지에 있는 양폭산장. 바로 가까이에 양폭이라는 폭포가 있기에 그렇게 불리지만 매번 지나다니면서 왜 여기에 산장을 만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 하던 그곳. 공룡능선에서 가까운 다른 대피소가 이미 만원이라 어쩔 수 없이 택했는데 시설은 중청이나 소청 또는 희운각 대피소 보다 한 수 위였다. 깨끗하고 널찍한 데다 산장에서 보이는 경치도 뛰어나다.
위치가 애매하다 보니 찾는 이들이 많지 않고, 그래서 언제 가도 자리가 있고, 항상 넉넉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곳이라는 근무자의 설명대로 여유로운 느낌도 좋았다. 늘 택하던 다른 산장과는 달리 그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양폭산장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무너미 고개. 어떤 때는 너무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오르막이지만 이번엔 기운과 기대가 넘쳐서인지 한 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에 어느새 올라간다. 조금만 더 가면 신선대, 누구든 세차게 가슴이 뛰는 곳이다. 바로 공룡능선의 장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고갯길을 오를 땐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아! 다행이다. 이 순간만은 나의 기운이 친구의 기운을 눌렀다. 바로 눈앞에 웅장한 바위능선이 줄을 잇고 열병식을 한다. 이제 저 능선을 따라 기막힌 경치 속으로 무아지경에 빠져들 것이다. 계곡 건너엔 마치 전설 속의 성지인 양 언젠가는 한 번 가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용아장성이 구름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감탄하는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수도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공룡능선. 오락가락하는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주기에 친구의 기운이 아직 다 하지 않았음을 고마워한다. 친구가 길옆 봉우리에 호기심을 보인다. 많이도 지나다닌 길의 바로 옆이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불과 몇 미터를 올라간 그곳은 이제껏 본 그 어느 경관보다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전망대다.
절로 탄성이 터지고, 연신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런 멋진 광경이 있다니! 똑 같이 공룡능선을 바라보지만 신선대에 비하면 이곳은 훨씬 더 가까운 거리이고, 보이는 능선의 범위 또한 다르다. 공룡능선의 거침없는 암봉들이 장쾌한 라인을 그리며 거대한 병풍을 펼친 것처럼 바로 눈앞에서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공룡능선 종주는 항상 하던 그대로를 답습하며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초행길 친구의 호기심 덕분에 길 옆 봉우리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막힌 경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운 위치에 선다는 것만으로 발견하게 된 공룡능선의 또 다른 멋진 모습.
공룡능선의 새로운 모습만이 아니다. 친구가 먼 옛날 고교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린 덕분에 육담폭포와 비룡폭포까지 찾는 덤도 누릴 수 있었다. 소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건만 이제껏 나와는 인연이 없다가 새로이 나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함으로써 새로운 자극을 받고,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유를 산에서도 체험한다. 그렇다고 항상 새 인물을 맞이할 수는 없는 법. 대신 늘 하는 일도 시선을 바꾸고 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도록 해야겠다. 조그만 변화로 한적한 산장에서 여유 있는 하룻밤을 보내고 멋진 경관을 발견하듯 또 다른 경험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