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애양원... 그곳에.

이성언 2010.10.06 조회 594

모처럼 시간이 나서 국내여행을 나섰다.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애양원. 그곳에,

사랑의 원자탄이라 하셨던가? 원자탄이라..



사실 난 지금껏 전라도 지방으로는 주둔해 본적이 영 없다.

경기, 충청, 경상 제주도에는 적어도 삼년 이상씩은 살았다.

강릉에는 누님이 계셔 간혹 놀러가고, 서울은 오래도록 산다.



우리 현대사에서, 한말과 일제침탈, 해방과 미군정기, 건국과 한국전쟁. 휴전...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의 휴전이 안정될 때까지의 대구 10.1사건, 제주 4.3사건,

여수.순천사건을 정리해보고,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의 이음 가운데 큰 소용돌이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도...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통일을 위한 준비에서와 통일 후에는 또 얼마나 혼란이 생길까?



지금도 쉽지 않은데 국론의 분열이 더 심화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무거운 마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번 전라도 탐방은 나대로 한 가지 의미를 찾을 목적을 갖고 출발하게 되었다.

지역감정에서 보수와 진보로 대립되는 현상을 어떤 정신으로 화목하여 화합을 이룰까?

작은 이해와 감정의 비틀림이 깊이 오래 남는데, 자신의 귀한 두 아들을 총살한 공산청년을

용서하고 양 아들로 삼고, 전도사로 키워내는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어찌 이루어 냈을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이면, 손양원목사님의 그 정신이면 치유되리라.



희망찬 목적을 안고서 귀한 마음 주심에 감사하며 대구서 하루 유하고 순천을 거쳐 여수로 향하는데,..

순천에서 여수로의 길목에서 칠순의 노인께서 나의 길찾기를 재확인까지 하면서 친절하게 알려주시며

[상(上) 경(敬) 하(下) 애(愛)의 귀한 전통이 다 없어지고 내리사랑만 남았다]고 개탄하시며 한숨짓다.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은 하면서도 이웃에 무심한 현세대를 향한 동감으로 착잡한 마음을 남겨두고서,

여수공항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의 힘찬 이륙를 바라보며 공항 진입로를 휘돌아 애양원에 도착.



애양원에서는 맨 얼굴에 온전한 두발과 팔로 가방을 들며 끌고 걷는 자체가 마냥 죄스럽다.

조신하게 머리 조아리며 간혹 문턱을 넘기도 힘들어 하시는 분들의 휠체어를 밀어드릴 뿐.

성산교회[구. 애양원교회]담임목사님으로부터 귀한 깨달음의 말씀 들은 것이 참 귀하다.

순교자 묘지[손양원 목사님 내외 합장묘, 두 아들 묘]와 순교기념관등 순교성지을 둘러보고,

성지 토플하우스[호텔식 숙양시설]에 호우 중에 혼자 자면서 저녁과 아침은 자동 금식에 감사.



다시 목포에서 이틀을 묵고, 토요일 아침에 용산역으로 향하는 KTX에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오다!!

전날 목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기획전시실에서 목포대학교 주최 [김대중 리더십 배우기 강좌]를 들으며

이 지방색과 지방문화와 정신을 알 수 있을 얼마의 자료를 구할 CTC PT를 잡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세상의 모든 여행은 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소설{달콤한 신성모독}에서 누군가 말했던가?

이번 탐방에 공,사간 아무런 방해공작 받지 않고 생각 정리할 자료만 얻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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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C PT=contact point의 약식형 기술.


#애양원교회는 1912년 나병원 안에서 처음시작, 1928년 현위치로 온 후 1935년 [애양원 교회]로 불렸고,

1982년 자녀들 고려 [성산교회]로 개명해서 오늘에 이른다.-그래도 애양원 교회로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성산교회는 약관 26세에 담임하셔서 26년째 목양하시는 이광일목사님이 시무. 수요 예배는 오후 1시 드린다.



<대구 10.1사건>

해방후 불과 1년이 지난 1946년 10월에는 대구․ 경북을 시발점으로 한 남한의 각 지역에서 피바람이 불었다.

10월 1일, 이 사건은 대구. 경북에서만도 경찰관 60명, 민간인 54명의 사망자와, 6천여 명의 피검자, 1500명의 수감자를 냈으며

전국적으로는 1,000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30,000명 이상이 체포된 대규모 유혈사태였다.


<제주 4·3 사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유혈사태를 말한다.


<여수·순천 사건>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이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19일,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주동하고 사병 2,000여 명이

전라남도 여수에서 봉기함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좌·우익세력으로부터 전남동부지역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 이성언 2010/10/06 17:13:15
    1. 애양원 홈피 ; http//www.aeyangwon.org 참조
    2. 국론의 화합을 위한 손양원 목사님의 정신을 원용함에 대한 의견이나 자료 주실 분-> 010-9998-5920 ; 이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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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