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민족은 서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962년 잭슨가의 오토(Otto) 1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도시국가, 영주국, 주교령, 공국, 왕국 등으로 분열돼 유명무실하다가 1806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들은 크게 자성했다.
특히 프러시아의 샤른호르스트(Gehard von Scharnhorst) 장군은 프레드릭 대왕이 육성한 강군이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고 군사개혁을 주장했다.
그나이제나우(August von Gneisenau)와 론(Albrecht von Roon) 장군이 합세하며 참모제도 신설, 군사교육 강화 등 대폭적인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군사전문학교를 설립하고 크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를 교장으로 군사이론과 군사전략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프러시아의 군사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위대한 정치가 비스마르크(Otton von Bismarck)가 등장했다. 1861년 빌헬름 1세가 그를 재상에 임명했다. 국제 정치사상 최초의 비엔나 국제체제가 형성돼 독일은 32개 연방으로 오스트리아가 의장국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신봉자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며 거세진 게르만의 민족주의를 통합했다. 프러시아 중심으로 소독일주의 통일을 구상했다. 오스트리아를 포함할 경우 패권 다툼을 우려해 제외시켰다.
그는 연일 정쟁에 빠진 제국의회의 행태를 개탄하며 “독일은 프러시아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이 시대 중대한 과업은 연설이나 다수결보다 철(鐵)과 혈(血)에 의해 결정된다”며 통일을 과감히 추진했다. 1866년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으로 북독일연방을 이뤘지만 남부지역 독일공국들이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비스마르크는 강력한 독일제국 건설을 위해 프랑스와 일전이 불가피함을 결단하고 몰트케 참모총장에게 전쟁을 준비시켰다.
역사는 언제나 준비한 자의 편이다. 1868년 스페인에서 군사반란으로 이사벨라 여왕이 프랑스로 도피해 오자 나폴레옹 3세는 마티뇬 궁전에 머물게 하고 후대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의 전쟁 구실로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를 착안했다. 스페인 정부가 호헨초렌가의 레오폴드 왕자를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하고 부임을 요청하자 비스마르크는 수락했다는 보도를 흘렸다.
이러한 보도에 나폴레옹 3세는 대노하고 즉각 전쟁을 결정했다. 프랑스는 선전포고와 함께 나폴레옹 3세가 진두지휘했지만 1870년 세당전투에서 대패하고 생포됐다. 몰트케는 샤른호르스트 장군이 추진한 군사개혁대로 철도를 이용한 신속한 이동과 배치, 우수한 작전 그리고 효율적인 참모제도로 대승을 거둔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국왕 빌헬름 왕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모시고 와 독일제국과 황제를 선포했다. 비스마르크의 대전략과 통합의 리더십이 게르만 제2제국을 통일한 것이다. 이러한 게르만의 저력이 ‘라인강의 기적’과 1990년 독일 재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민족도 백년대계의 국방개혁과 통일 주역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최명상 인하대 정외과교수·(예)공군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