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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팍스 아메리카나

관리자 2008.12.23 조회 583

※ 16기 최명상 회원 12.23일자 국방일보 병영칼럼란에 기고된 글을 발췌하였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정부가 탄생하면서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세계적 관심사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어떤 경쟁자도 견제도 없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했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축과 CIA 기능 전환 등 조심스럽게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형성해 왔다.하지만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무법자들이 등장하면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다. 그가 1991년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은 유엔 결의로 다국적군(MNF)과 함께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두 번째 국제 무법자가 북한의 김일성이다. 그는 핵무기를 개발하다 발각됐다. 미국은 공중공격(Surgical Attack)도 고려했지만 지미 카터 - 김일성의 평양회담과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봉합했다.

세 번째는 유고연방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로다. 그는 1999년 코소보를 점령했다. 미국은 유엔 결의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자 나토국들과 전범자로 체포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했다. 국제협력하에 팍스 아메리카나가 순조롭게 진행돼 갔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안보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미국의 일방주의로도 세계평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군의 해외 주둔을 재조정(GPR)하고 첨단화·경량화·기동화하는 국방변혁을 단행했다. PSI와 MD를 추진했다. 이런 결과로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오만하고 부주의하고 나태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군을 15만여 명으로 증원했지만 계속되는 자살폭탄 테러로 4200명 이상 희생자만 늘어났다. 미국인들은 이라크전쟁의 장기화에 베트남 전쟁 같은 염증을 느끼면서 공화당 정부는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틈새에 북한의 김정일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 하나의 국제 무법자가 대를 이어 나타난 것이다.

네오콘 세력은 응징을 주장했지만 여론의 악화로 오히려 물러났다. 미국은 베이징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핵 불능화 약속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금융위기마저 터지자 공화당 정부는 대선에서 대패하고 오바마가 당선된 것이다. 오바마는 금융위기 해결과 이라크 철군 그리고 북핵문제 직접타결과 한미FTA 재협상을 언급했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비는 5700억 달러로 전 세계 나머지 국가 총합을 능가했다. 변화(Change)를 선거 이슈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이 팍스 아메리카나 국제질서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지명하는 자리에서 동맹과 국제협력 그리고 군사력보다 외교력을 우선하는 통합전략을 강조했다.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의 외교력을 발휘할 때다.

<최명상 前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박사 genechoem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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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2
200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