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환갑을 지나 암벽을 오르는가?
금기연 2011.08.15 조회 849
나는 왜 환갑을 지나 암벽을 오르는가?
“아니, 뭐라고? 환갑 지나 암벽등반을 시작하더니 이젠 등산학교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험하다고, 장군출신으로서 과연 할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진심으로 충고를 마다하지 않던 친구. 끝내 침묵 단계에 들어선다. 문득 자신도 궁금해진다. 일찍부터 바위를 하던 사람도 그만 둔다는 이 나이에 나는 왜 암벽을 오를까? 암벽등반만 생각하면 왜 모든 일을 제쳐놓고 뛰어가고 싶어질까?
가파른 산길을 올라 수직의 깎아지른 암벽과 처음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그 높이가 수십 미터이거나 백 미터를 넘거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투조종사로서 30여 년을 비행한 필자 역시 ‘과연 저기를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치 출격을 앞둔 조종사와 같은 팽팽한 긴장을 느낀다. 경외감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긴장과 경외감은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안전한 등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낮추어 진지하게 생각하고 경건한 자세가 된다.
바로 이것이다. 환갑을 지났다지만 평균연령 100 세 시대엔 살아가야 할 날이 살아온 세월만큼 길게 남아있다. 일부 미래학자들의 말처럼 120이나 150까지 살아야 한다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길고긴 세월을 무기력하게 지낼 수는 없는 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면, 아니 은퇴 후 느슨해진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바로 이런 긴장과 경건한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지 않을까?
활기차게 살아가려면 도전이 필수다. 낯선 여행지를 찾아 나서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새로 맛보고, 늘어나는 뱃살을 줄여볼까 움직이는 것은 도전이다. 이제껏 고집 부려온 성격이나 행동을 반성하고, 세월에 맞게 자식이나 배우자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고, 체질화된 습관을 고쳐보겠다는 것은 더 큰 도전이다. 악기나 운동 등 취미를 새로 시작하는 일, 죽은 후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실천하는 일은 꽤나 어려운 도전이다.
도전은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 실패하지나 않을까, 도전하겠다고 하다가 주위로부터 조롱받지나 않을까, 도전에 필요한 이런저런 일들로 이제까지의 편안했던 일상이 휘둘리지나 않을까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거니와 그 결과도 망설임보다 훨씬 맛있다.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도전이지만,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그것을 바로 일상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된다. 더 이상 도전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이런 도전의 생활화에 암벽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누구든 암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든 오르다가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작은 실패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부담이 없다.
다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고, 새로운 방법을 전수받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서나 배운다. 그래서 안전하게 오르면 그것으로 고마워한다. 더 큰 만족과 희열을 느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배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암벽을 하면 이런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
자신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체력으로 인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혼자서도 단련이 필수다. 매일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40~50회 팔굽혀펴기를 연습하고, 하루건너 덤벨로 근육운동을 한다.
또 아무리 근력이 좋더라도 몸이 무거우면 등반이 어려워지므로 체중에 신경을 쓴다.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복근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연말쯤이면 王자가 새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씩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도 자신을 채찍질하고, 때론 복근처럼 생각지도 않은 좋은 선물도 받게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이것은 몸이 더 잘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암벽을 시작한 이후엔 신기하게도 음식에 대범하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의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되어 체중조절이 저절로 되는 느낌이다.
암벽등반은 보통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길을 오른다. 그리고 등반을 하다보면 시작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따라서 최선의 등반, 안전한 등반을 위해서는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같은 봉우리라도 등반할 구간을 어떻게 나누고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오르느냐에 따라 시간과 체력의 소모가 달라진다. 항상 최선의 방안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눈앞의 어려움에 굴복하여 포기하는 대신 다른 방법,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의 검토, 최선의 해결책을 위한 연구가 습관화된다.
암벽등반은 한 순간의 실수로 생명이 오갈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고, 신중하고 세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때로는 과감해야 한다. 몸을 날려야 할 순간에 멈칫 거리다간 추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확실한 확보가 우선이다. 확보 없이, 준비 없이 몸을 날리는 것은 소위 ‘묻지 마’ 등산객들의 무모한 행동이 필연적으로 낳게 마련인 비극의 시초가 될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신중하고 세밀한 준비 없이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다. 그렇다고 용기를 발휘해야 할 순간에 멈칫거리다간 기회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2학년 때 생도대표로 미국의 육‧해‧공군 사관학교 견학을 다녀오며 나의 첫 카메라를 장만한 것이 1970년. 그 후 40여 년의 세월 동안 십여 대의 사진기를 다룬 사진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일은 여간 짜릿한 일이 아니다.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때로 완연하게 달라지는 능선과 도시의 모습,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바위와 암벽, 그곳까지 올라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기이한 소나무, 심지어는 갓 부화한 어린 새끼에게 다가갈 까 봐 수십 분간 계속 우리를 공격하여 결국 등반로를 바꾸게 했던 선인봉의 매 부부 …
정상에 올라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동료들에게 사진다운 사진으로 감동을 배가시키는 보람은 작은 나눔의 방법이다.
암벽등반은 남 보기에 우스꽝스러울 때도 있다.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난관에 부닥쳐 돌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굴뚝 모양의 틈새에서 온 몸을 구더기처럼 꾸물거리며 오르는가 하면, 두 손으로는 당기면서 두 다리로는 미는 어색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보기에도 멋진 긴 경사면을 폼 나게 내려오려면 그 전에 그만큼을 올라가야 한다. 때로는 쉽게, 때로는 아주 힘들게.
인도에서 8년째 인도전통무용을 익히고 있는 딸아이와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아들 녀석에게도 한 마디 말은 않지만 보탬이 됨이 분명하다. 예술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상살이 자체가 생각처럼 쉽지 않고, 또 열심히 한다고 바로 성과가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 좌절하고 힘들 때 아빠의 모습을 보면 다시 떨쳐 일어서기에 도움이 되리라.
빼놓을 수 없는 부수입이 있다. 강사라면 누구나 청중의 주의집중을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짜낸다. 그런데 바위를 타는 사람으로서는 암벽등반 사진 한 장이면 효과만점이다. 게다가 환갑을 지나서야 암벽등반을 시작했으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메시지가 절절하게 전달된다. 바로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좋은 사례가 된다.
회사나 개인과 코칭을 할 때도 이런 경험담을 적절하게 곁들이면 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위인의 이야기보다도 생생해서 실감이 나고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암벽등반은 나에게 겸손과 도전과 배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몸에 배이게 만들어준다. 현역 시절의 비행을 앞둔 순간처럼 짜릿한 긴장감으로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자신의 체력이 나이와는 달리 젊은이 못지않음을 확인하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얻으며,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곳에서 색다른 사진을 찍고,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을 항상 찾아보도록 해준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고비를 넘는 지혜를 얻고, 신중하고 과감하여야 하는 이유와 순간을 깨달으며, 강의와 코칭에서도 효과를 거둔다. 이러니 어찌 암벽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대, 나른한 일상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내일을 살고 싶으신가? 암벽등반에 도전해 보시라. 심신의 활력이 샘솟고 예기치 못했던 많은 선물이 그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