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웅산 사건 > 나던 날 , TACC
유병구 2011.10.09 조회 2703
배기준 장군(12기)께서 쓰신 글을 아래와 같이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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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사건> 나던 날, TACC
배기준
1983 년 10 월 9 일 한글날, 일요일이었던가? 어쨌든 휴무날이었다. 작전 지휘 현장, 실제 작전 명령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시작서부터 작전이 종료될때까지 당사자로서 목격자로서 맹활약을 하였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바로 28 년째 되는 <아웅산 사건> 나던 날이다. 나는 그 당시 작전사령부 전술항공통제본부(TACC : Tactical Air Control Center) 전투운영과장 보직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비행대대장 이전 1년 반을 그 곳 선임작전근무장교 (SODO : Senior Operation Duty Offier)로 전력(前歷)이 있는 바람에 전투비행대대장 1년이 지나자 말자 다시 이곳으로 전속되어졌다. 여기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늘 시도 때도 없이 온통 마음과 생활 전부를 그 일에 바치는 불문률이 있다. 24시간, 그러니까 밥을 먹는것도 잠을 자는것도 오직 그 임무에 머물기 위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일터요 싸움터이다. 아마 항재전장(恒在戰場)의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이 시절 공중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였다. 소련 전투기 KAL기 격추, 이웅평 귀순, 중국 손천근(MIG21)과 민항기 트라이던트 항법 착오 착륙, 전국 실제공습경보 발령등이 내가 경험한 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인데 그 나마 대과없이 잘 넘어갔다. 조국 영공 방위와 관련되어 있는 중요 사안이라 항적을 반드시 레이다로 포착하여 적아 식별후 실제전술조치(Tactical Action)로 작전 공간에 항공기가 투입되어져야한다. 원래 항공작전은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상부보고 보다 전술조치가 우선하여 언제나 '선조치 후보고'이다. 작전실 대형전시판에 이 글이 크게 새겨져 있다. 명령같은 구호이다. 분초를 다투는 항공기 속도때문에 자위와 보복 차원에서 공군특유의 행동강령 같은 작전지침이다. (첨부 :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터졌을때 사후 보고시간을 확인하는것은 있을수 있으나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열번 잘하다가도 한번 실수하면 공군의 위상이 천길만길 추락한다. 국방에 관한 문제, 방공망의 강(强)과 약(弱)이 그대로 들통 나는 마당이니 국민에게는 물론이고 북한을 비롯하여 국가간에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최 일선의 전장 사령탑은 자칫 책임 문제로 군복을 벗고 나가야 할 만큼 예민하고 심각하다. 그런 시대 상황이라 K 작전사령관의 특명으로 P 전술항공통제본부장, L 북부관제부장(망일산)과 함께 3명이 전격적으로 교체, 작전사령탑을 정비 보강하였다. 전술항공통제본부는 공군 군령(용병)의 최상위 부서로 전투운영과는 그 중심에 있는 핵심 자리이다. 영화로 말하면 기획이나 제작이 아니라 실제 현장의 감독이나 배우같은 역할이다. 미 공군구성군사령부(ACC)와 합동근무를 하는 이곳은 정보 통신 그리고 컴퓨터로 지휘통제하는(C4I)시스템이 완벽한 괴물의 벙커이다. 공군작전의 두뇌와 심장 같은 역할을 하는곳이기 때문에 건물이 견고하여 (Hardened) H - TACC 라 부르기도한다. 당일 근무도 아닌데 점심을 하고 오후 2시경, 통제관 근무를 서고 있는 전술항공통제본부장과 함께 작전사령지휘부 (TACC Top Dais)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마 아웅산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제 1신이 미 정보 계통으로 부터 작전사령지휘부로 수신되었다. 제차 확인 반문을 해야할 만큼 충격적 속보였으나 외무부를 포함하여 우리 정부의 어느 안보 기관에서도 아직 접수하지 못한 사건 정보가 최초로 전송된 것이다. 막강한 미공군 정보 자산과 시스템으로만이 가능한 실시간 정보(Real Time Information)는 가히 위력적이었다. 공군본부, 합동참모부 그리고 국방부와 안보관련 여러 부처에서 계속 새 정보를 요구하여 왔다. (첨부 : 북한 도발을 저지하려면 정보력이 전재되어야하고 그것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정보자산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국방이 미군과 연합해야 하는 가장 큰 원인, 아웅산 사건을 통해 그 사례를 일찌기 실감했다.) 초도 보고가 끝나자 수분내에 작전사령관과 미 비행사단장을 비롯한 한미 지휘관 참모 수뇌부가 하던 일과 스포츠를 멈추고 속속 현재 복장 그대로(미군은 운동복 반바지차림 그대로) 달려와 TACC Top Dais에 정위치(On Post)하였다. 예하 각 비행단 지휘관도 마찬가지였다.(ASAP On Post) 시간이 갈수록 새로 들어오는 정보는 더욱 치명적이어서 분위기가 점점 더 침통해져 갔다. 오후 늦게 대구 관제소(대구 Center)로 부터 공군 1호기(Code 1이 탑승한 Air Force One)가 급거 귀국 한다는 비행계획서(Flight Plan, On board Code 1)를 갑자기 보고 받고 작전실은 새로운 정보 입수 전파와 함께 또 하나의 임무로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대통령이자 국군 최고 통수권자를 공중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고 취약시기에 북한의 다발적 교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 예하 전투비행단에 전투초계비행(CAP: Combat Air Patrol) 전력을 증강하여 동서해안 북단, DMZ 인근에 전진 배치 시켰다. 현지 임무 교대(On Cap Point)가 서너시간 자동 순환되다가 어느 덧 일몰시간이 가까와 오자 한반도에 안개(Fog)가 몰려 오면서 전투초계비행 전력이 순조롭지 못하고 점점 어렵게 되어갔다. 일몰후 전천후 요격기 F-4 팬텀만이 투입되었는데 청주기지는 빠른 기상악화로 먼저 주저 앉고 오직 대구 기지만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1000 피트 간격의 활주로 부판이 보이지 않아 이미 비행 기상 제한치(Below Minimum)를 넘어가고 있었다. 대구작전부장으로 부터 직접 상황을 보고 받고도 방법이 없었다. 평소 전력 운용은 작전사령관이 중앙집권적으로 행사하지만 최종 운영은 비행단장에게 위임되는 분권적 개념에 따라 현장의 결심이 최우선이다. 작전이냐 안전이냐 ? 그 기로에서 나는 " 이륙하십시요." .(Mandatory Scramble) 작전사령관과 전술항공통제본부장을 등에 업고 비정한 출격명령을 내리면서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첨부 : 평소 비행훈련에는 작전과 비행안전을 7 : 3으로 배분하나 실제 작전은 그렇지 않다. 10 : 0 일 수도있다. 죽음을 각오하는 빨간 마후라의 정신 The Korean Pilot Soul, Red Scarf 이다.) 잠시후 항적이 작전전시판(Plotting Board)에 화살표로 시현되면서 조종사의 침착한 무선통신(R & R)이 들어왔다. " 푸른 Boy, 푸른 Boy, 2 Chicks available T ...." " 여기는 푸른 Boy, positive radar contact Vector 360 (북향) Climb Angel ...." 0 마일 안개속에서 이 무선통신은 여니때와는 좀 달랐다. 감격 바로 그 자체였다. 불의를 무찌르고자 날아가는 정의의 성난 독수리였다. 높은 자리(계급)에서 멀리 보는 K 작전사령관은 이미 남한 전 공군기지에 활주로등을 켜라고 지시하였다. 공군1호기나 전투초계기가 비상이 생기면 가장 가까운 기지에 즉시 착륙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명령하였다. 드디어 공군 1호기가 대한민국 영역 (대구 FIR)으로 진입하자 아래층 작전실과 상층 작전 사령지휘부의 한국군이나 미군을 막론하고 사병에서 최고 선임자 작전사령관에 이르기까지 그 비행 항적(화살표)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 항적은 살아서 계속 북상하며 수도 서울로 향하더니 드디어 목적지에 착륙하였다. (첨부 : 이것이 '애국'인지, '충성'인지? 는 잘모르겠으나 후일 곰곰히 생각하니 그것보다 '임무완수'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푸른 Boy, 푸른 Boy, mission complete RTB request radar vector ...." 전투초계 항공기는 기상과 연료때문에 기지 귀환 (RTB : Return To Base)을 서둘러야했다. 숨소리만 들리는 깜깜한 밤하늘, 침묵속에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장벽은 안전한 착륙(Landing)이었다. 안개비가 땅에 까지 깔렸으니 마지막 단계에서 지상전파탐지기(GCA : Ground Control Appoach)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활주로에 나온 비행단 지휘관 참모를 비롯하여 그 임무조종사들이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기를 바라는 모든 장병들의 마음을 한데모아 GCA Controller는 최고 고참 준위 아니면 상사가 마이크를 잡았을 것이다. (첨부 : 그의 아빠가 이 밤중에 악천후를 뚫고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지도 모르고 꿈나라에 가 있을 그 조종사의 아들과 딸들. 아까부터 창가에서 기도하는 그 조종사 아내의 소원도 함께 담아 이 노련한 GCA 근무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 기술과 정성을 다해 On Course, On Glide Path로 유도했을것이다.") 나는 너무나 잘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조종사 그리고 관제사, GCA 근무자, 야간 조명아래 주기장을 바쁘게 내달리며 정비 무장 통신 보급 감독관과 하사관 병들, 사고처리반과 앰블런스, 기상예보 요원들... 후방지원 장병 모두 그 날은 특별한 영웅들이었다는 사실을.... 자정이 이미 지난지 오래된 시각, 다 돌아 간 벙커를 마지막 빠져 나오니 밖에는 여전히 안개비가 가로등에 부딪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부분 모기지에 착륙을 포기하고 기상이 좀 더 양호한 타기지에 내렸다. 그 작전에 참가하여 마지막 Happy Landing을 해 준 후배 조종사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한번 감사한다. 사람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막다른 갈림길에서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기적과 행운을 늘 마음에 간직할 것이다 나는 그후 공군본부 작전상황실장 1년을 합해 만 4년간을 작전운영 분야에서 일했다.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나 그 분야에 그토록 오래 근무하였으니 그것으로 자칭 베테랑이라 자부한다. 진지하면서 순발력과 함께 번득이는 상상력으로 저돌적이어야 한다. 순간순간 닥치는 천둥번개치는 상황앞에 탁상공론할 시간이 없다. 사느냐 죽느냐에서 긴 설명도들을 시간이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This or That) 평소 늘 원칙만은 생각해 두어야한다. 신사놀음이 아닌 상대를 속이고 또 속이는것이 전쟁의 전술이니까 느낌(Feeling)과 눈치(Sense)도 있어야 한다. 공군작전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어 고급 영관장교로 가는 필수 보직이다. (첨부 : 근래 크고 작은 지 해상 공중 사건 사고를 수시 접하면서 느긋한 여유와 위엄은 전근대적 미덕이다. 현대 과학 무기는 신속 정확하여 이를 용서치 않는다.) 오늘, 그 날의 작전일지를 되감아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공군에서 철저하시며 속은 따뜻하기 그지없는 군인중의 군인 K 사령관님의 '가장 높이 나는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그 날의 명령은 지금도 내 가슴에 좋은 생활 지침이 되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여 공군의 방패막이를 하신 들소(Buffalo)같은 P 전술항공통제본부장님께 경의를 표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부하를 보호하려 했으나 나의 이륙명령에 복종하신 대구 S 작전부장님께 감사한다. 일거수 일투족이 계급에 비해 벅찬 임무를 수행하는 SODO, FIDO와 SODO FIDO Tech 중상사 그리고 중령급 최고 숙련 17 특기 선임관제사들, 작전전시판 뒤에서 좌표를 받아 거꾸로 글씨와 그림을 그려 나가는, 그래서 작전 명령과 지시를 잘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사병들, 그 어느 누구든지 햇빛없는 암실, 작전실 뒤에 숨어서 고생하는 나의 부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것 뿐이랴 벌써 초 겨울인 산 정상에서 '조국을 지키는 하늘의 눈' 이 된 관제부대 요원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국가 중책을 수행하다 아웅산에서 목숨을 바친 17명의 고귀한 분들에게도 묵념한다. 파편 투성이로 피를 철철 흘리며 필립핀 군병원으로 긴급 공수된 4성 장군 L 합참의장님도 떠오른다. 가맣게 잊어먹고 있지만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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