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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등반대장의 지시에 7명의 동기 모두 발걸음을 멈춘다. 숨 고르기란 비교적 길게 쉬는 휴식과 달리 배낭을 멘 채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서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턱 밑까지 차고 어지럽다. 고소증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머리가 아프고 쉬 피곤해진다. 다들 헉헉거리면서도 혹시 누군가가 잘못되지 않았나 서로 살핀다. 사관학교에서부터 40여 년을 다져온 우의와 배려, 함께 산행하며 닦은 경력과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휴식과 숨 고르기로 속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걷는다. 역설적이지만 히말라야의 고봉은 천천히 걸어야만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체르고리 5000m 정상에 올랐다. 일반인이 산소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도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랑탕 계곡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하얀 눈이 가득한 설봉들이 360도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한쪽으로 넓은 평원과 강이 이어진다. 랑탕 계곡은 깊고 웅장하고 아름답다. 계곡 깊숙한 곳을 탐방하고 난생처음 5000m에 오르다 보니 이레도 금방이다.
롯지는 숙소와 식당을 겸하고 있다.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한식을 위주로 했다. 출발 3개월 전에 위장절제수술을 받은 대원이 있어 음식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 등산용 압력밥솥과 버너, 카트만두에서 구매해간 쌀로 밥과 김치찌개 등을 준비한다. 우리에겐 한국에서 구입해 끼니 단위로 재포장한 김치가 최고다. 쌀과 김치·통조림 등으로 교대로 준비하는 식사는 비용도 절감하는 한편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다음날의 일정 등을 이야기하며 휴식을 취한다. 잠시 후엔 난방이 되지 않아 커다란 냉장고 속같이 썰렁한 숙소로 가야 한다. 전기사정이 나빠 식당이 불을 꺼버리기 때문이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전기인지라 충분할 리 없고, 걸핏하면 가동되지 않는다. 덕분에 밤 9시에는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3시간 15분이 빠른 한국 시각으로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히말라야라는 천혜의 자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제값을 받지 못한다. 난방이 되지 않고 화장실도 불편한 롯지는 1박에 2인실이 6달러 정도. 음식까지 합쳐도 하루 30달러에 미치지 않는다. 조금만 시설을 보완하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으련만. 안타까울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일 년의 준비 기간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서울 근교산은 물론 설악산까지 다니며 훈련할 때는 한결 젊어진 느낌이었다. 누구나 한번은 가 보고 싶어 하는 히말라야라는 꿈을 향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환갑이 지났지만,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히말라야를 향해 의기투합한 역전의 용사들. 역시 군 출신은 달랐다. 한계 상황에서의 자발적인 협조, 틀림없는 역할 수행, 몸에 익은 상황파악 및 배려, 어려울수록 빛을 발하는 여유와 유머감각 등. 이번 여행은 모두에게 우리의 장점과 능력을 새삼 확인시켜 준 멋진 추억의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