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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서'가 장관이 되면 안되는 이유

관리자 2012.10.15 조회 96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선거철이 다가오니 다시 ‘폴리페서’가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본분인 강의나 연구는 소홀히 하면서 특정 후보를 따라 무리 지어 다닌다는 게 언론에 비친 이들의 모습인 듯하다. 세 대통령 후보 진영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수가 무려 500명을 넘어섰다니 그런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필자도 한 후보의 정책을 조언하고 있다 보니 일부 언론사 기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찾아와 강의와 연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취재를 하고 간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듯 대선후보들의 정책 조언에 참여하는 이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상아탑의 순수성을 폄훼하는 ‘망국’과 ‘망학’의 원흉일까. 물론 무릇 학자의 존재 이유는 자연과학이든 인문사회과학이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진리 탐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결과로 얻은 지식을 통해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려는 의지일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공감대를 구축해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폴리페서들이 선거 기간에 강의와 연구를 소홀히 해 “상아탑의 순수성에 먹칠을 하고 교육을 뒤튼다”는 비판 역시 요즘의 대학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훨씬 엄격해진 강의평가와 연구업적 관리 덕분에 본업을 소홀히 하는 교수는 승진은커녕 아예 퇴출위기에 직면하게 된 지 오래다.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원로교수들은 그런 평가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의도 부실하고 연구업적도 없는 퇴물 학자를 어느 대선 캠프에서 끌어들이려 하겠는가.

 더욱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정책연구 인력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 개발을 위해 대학교수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그리 간단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폴리페서가 나서지 않으면 한국의 개혁은 요원하고 희망이 없다. 개혁적 학자들이 책을 일시 물리고 나랏일을 걱정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필자도 동의한다. 경영학자가 기업을 컨설팅하고 공학자가 기술개발을 자문하듯 사회과학자가 정책개발을 돕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폴리페서의 역할과 관련하여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이들의 역할은 정책을 생산하고 조언하는 것이지 정·관계 고위직을 차지해 직접 집행에 나서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장·차관 자리를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선 교수들에게 그러한 직책을 수행할 만한 능력과 전문성이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정부부처는 해당업무에 수십 년간 종사해온 엘리트 관료들로 이뤄진 고밀도 조직체다. 학교에서의 행정 경험밖에 없는 이들, 학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전부인 이들이 이러한 조직을 관리할 만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경우란 상상하기 어렵다. 정·관계 연줄이 없는 이들이 정부부처 간 정책 조율을 원만히 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학자 시절의 지론에 얽매여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하거나 국정을 자기 지론의 실험장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더욱이 국가안보 문제를 다루는 자리라면 한층 더 그렇다. 학교에서의 행정 경험밖에 없는 이들이 방대한 조직을 관리할 수 있을지, 상아탑의 담론이나 자문교수 경험만으로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결정을 내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대통령을 위해 국회와 언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이들을 설득해낼 헌신과 배포가 있을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긍지와 명예로 살아온 학자들이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자존심을 죽이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필자가 참여정부 당시 제의 받았던 정보기관장이나 청와대 고위직을 끝내 고사하고 비상근직을 고집했던 것도 이런 생각이 한 이유였다. 필자에게는 불행히도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교수가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자들의 선거 참여는 어쩌면 공적 봉사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정책 아이디어가 한국 사회를 더욱 건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자리 할 욕심’으로 선거에 매달린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혹시라도 정책을 집행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교수는 차라리 지금 당장 대학을 떠나 ‘생즉사 사즉생’의 자세로 후보를 위해 뛰어라.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자리 욕심은 버려야 한다. 폴리페서가 나쁜 게 아니다. 분수를 모르는 폴리페서가 위험할 뿐이다.
  • 이치훈 2012/10/15 14:19:49
    모 정권 출범당시 대학교수들이 정부기관에 많이 등용되는 때에, 미국 유명대학에서 2개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보직교수로 학문과 학교일에 매진하던 모 교수가 내게 질문을 했다. 대학교수들의 정부기관 고위직 등용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고, 나는 전문분야 지식 및 연구기능을 갖고있는 것과, 조직관리능력
    혹은 리더쉽과는 별개이므로 경험이 뒷바침되지 않은 분야의 조직 혹은 기구의 책임자로 임명하는것은 과대망상에 의한 위험한 인사라고 말했다. 교수로서 교수들의 실상을 잘아는 그의 반응은 그 답변이 정답이라는 표정이었다.
  • 변희룡 2012/10/18 07:24:00
    문교수의 말이 일면 타당한듯 하지만 몇군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군요. 교수들은 모두 평생 연구만 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들의 경력은 그들 숫자 만큼 다양합니다. 전직 장관, 4성장군, 전직 고관, 의사, 변호사 출신이 교수로 여생을 보내는 경우도 봤습니다. 학교에서의 행정경험밖에 없는 사람들 아닙니다. 상아탑 담론만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종이권에 개입하여 계속 활동하는 사람도 많고. 그 개입이 정당한 학문활동인 경우도 많습니다. 교수직은 가장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저는 교수가 된 다음 결혼하는 사람을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늦게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사회경험이 많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그만큼 성실한(또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뜻도 됩니다. 교수직을 가지고 있으니, 후학교육에 열중하고 다른 직종 넘보지 말라는 뜻, 자리 다툼에 끼지 말라는 정서는 이해합니다만, 국가 중요 인사는, 나눠먹기식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최고의 사람을 선택하여 일하게 하는 것이 정당한 인사입니다. 교수라고 우대할 필요도 없지만 배척해서도 안되는데, 무조건 배척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리싸움이지, 정직한 판단은 아니라고 느껴 집니다. 교수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정희 시절에는 군인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일반대학이 공부안하고 파행하는 동안, 사관학교는 공부 시켰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해 봤습니다. 그런데 일반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니, 군사문화의 교육이 일반대학교육에 뒤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군의 방대한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진출할 기회가 적어진 것은 국가적 손실입니다. 군 내부에서 스스로 사관학교 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지도자급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사회는 군 출신들이 경험을 살려 대학에, 기업에, 관공서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균형있는 국가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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