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열장군은 우리의 영웅이다.
최규순 2009.09.29 조회 1213
공군창설의 주역과 공군독립의 큰별
서암 김정렬 장군 동상 건립 취지
최 규 순 ( 1기생 회장)
“현재의 북한 공군의 전투력으로 보아 만약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즉각적인 북한기의 공습으로 서울 시내는 불바다가 될 것이며 한강다리는 끊어지고 국민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
북한군의 6.25 남침이 일어나기 14개월 전에 이토록 끔찍한 상황을 정말 섬뜩할 정도로 정확히 예언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1949년 4월 사관학교 교육과정을 준비해 가며 첫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던 육군 항공사관학교 교장 김정렬 대령이 공군의 독립과 전투력 강화의 필요성을 널리 홍보할 목적으로 자비 출간하여 정부 요로에 배포한 『航空의 警鐘』이란 등사본 책자에서 “한국 공군력 부재시의 가상 시나리오”로 예측했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눈 앞의 현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자신들의 잉여 전투기를 아르헨티나에는 단돈 1달러에 제공하면서도, 주한 미군이 사용하던 경폭격기 30대는 한국의 거듭된 인도 요구에도 불구하고 도끼로 부수어 고철로 팔아 버릴 정도로 한국의 전투력 향상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습니다.
L-4, L-5 연락기와 AT-6 연습기 수십 대만 있었을 뿐인 우리나라에 우려했던 북한군의 남침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고, 과거 태평양 전쟁 시의 전투기 파일럿 출신이었던 김정렬 장군은 “전투기 한 대 없는 공군 참모총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공군 전투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전쟁상황이 날로 악화되어 가던 그 어느 날 김정렬 준장의 자택에서 갑자기 부친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뒤에야 용산 호국군 간부 양성소에서 부친을 만나 뵐 수 있었는데, “김정렬, 김영환 두 아들에게만 국가의 안위를 맡길 수는 없어서 참전을 결심하였다”는 것이 소리없이 집을 나온 이유였다고 하였습니다.
부친의 이토록 확고한 호국정신과, 미군 지휘부의 폭격명령을 거부하고 잿더미가 될 뻔한 합천 해인사를 끝까지 구해낸 대한민국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이자 친동생인 김영환 장군의 애국심이 있었기에 서암 김정렬 장군의 기적적인 공군 창군 작전이 시도되었고 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김정렬 장군의 공군 창군이라는 거대한 신화창조 프로젝트는 1946년 5월 사이공에서 동남아 지역 징병징용자 1,100명을 인솔하여 귀국한 지 몇 개월 뒤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화창조의 첫 단계는 육군 내에 항공부대를 먼저 창설하는 것으로 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공군을 독립시키는 것으로 계획을 짜고 일단 인적 자원의 확보를 위해 남한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항공 관계 인사들의 명단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는 대사업부터 착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출신의 첫 비행사로 알려진 안창남 선생과 똑같은 시기에 중국 유일의 자일로스코프 비행기를 조종했던 중국 국방대학 출신 비행사 최용덕 장군을 비롯한 중국 항공대의 여러 인사들은 물론이고 일본군 항공정비대대장을 지냈던 박범집 장군을 비롯한 일본 육사 출신의 항공 장교들, 중일전쟁 시 전투기 10대를 격추시켰던 이근석 장군을 비롯한 소년 비행학교 출신 인사들... 총 9개 영역에서 조종사, 정비사, 통신사는 물론이고 공항관리 업무까지 총망라하여 무려 500여 명의 주소와 연락처를 계급이나 경력 순으로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이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기에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빠른 시일 내에 육군 항공대 창설과 공군 독립이 잇달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최용덕, 이영무, 장덕창, 박범집, 김정렬, 이근석, 김영환 등의 일곱 분이 모두 부대장 급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육군항공대 창설을 위한 일념에 백의종군의 정신으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 특별반의 이등병 입교를 기꺼이 수락한 과정도 우리 공군 역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미국 군제에 의한 장교 훈련까지 마친 직후 육군 미군정 통위부 직할로 항공기지사령부란 것이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항공관련부대가 되었습니다. 김정렬 소위 형제가 돈암동 집에서 만든 데이터베이스 명단 중 앞에서 70여 명 정도가 이 항공기지사령부 창설에 참여하였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경축행사에서 육군, 해군과 나란히 항공기지사령부의 깃발을 들고 분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듯이 바로 이 날 또 하나의 기적적인 행운이 찾아 왔습니다. 새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이범석 장군이 개인적으로 김정렬 대위를 집으로 불러서 첫 국방차관과 참모총장의 인선에 대하여 논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이 때에 중국 공군 출신인 최용덕 장군을 첫 국방차관으로 결정하고 차관직 수락에 대한 설득 책임을 김정렬 대위가 맡게 되었습니다. 이범석 장관과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최용덕 장군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김정렬 대위는 이종찬 장군과의 끈질긴 협공작전으로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이어진 긴 토론 끝에 차관직 수락을 기어코 받아 내고야 말았는데, 덕분에 우리나라 초대 국방차관에 공군 출신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군조직법 부칙에 “장차 필요에 따라서는 육군 항공대를 공군으로 조직한다.”라는 문구가 들어 갈 수 있게 되었고, 공군 독립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1949년 1월 육군항공사관학교 개설, 6월 제1기 생도 입교식을 치르면서 새로운 인재 양성에 대한 일련의 작업을 마친 김정렬 대령은 같은 해 10월 1일 드디어 공군의 독립 창군을 이루어 냈고 동시에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초대 공군참모총장에 올라서 전투 장비의 현대화 및 그에 따른 예산 확보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항공대 창설에서부터 공군 독립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김정렬 열정이 멈춘 적이 없었고, 어느 한 부분도 장군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해군의 영웅이었다면, 서암 김정렬 장군은 누가 봐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우리 공군의 영웅이었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이 영광스러운 공군 창군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공군사관학교 1기생 일동은 우리 공군의 영원한 영웅 서암 김정렬 장군과 그 업적에 대하여 후배로서 과연 소홀함이 없었는지에 대하여 마음 속 깊이 반성을 해 보자는 데에 모두 뜻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서암 김정렬 장군의 빛나는 업적은 너무도 큰 것이어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수 년 전에 추진되었던 김정렬 장군의 동상 건립 추진계획이 진행될 때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얼마 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만 중단되어 버려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항공 분야에 종사했던 모든 인적 자원을 총망라해서 미국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도 빈틈없이 공군 창군을 성공시켰던 서암 김정렬 장군을 한때 일본군이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그 찬란한 빛을 현저하게 퇴색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우리 공군에서는 갑자기 영웅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영웅도 배출하지 못한 무능한 군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의 조상을 모조리 수장시킨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전쟁의 신으로 모시면서 러일전쟁 때 세계최강의 러시아 발틱함대를 맞이하던 날 새벽에 일본 해군 전 함대의 함상에서 전쟁의 신 이순신 장군에게 일제히 고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도고 제독에게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다”라는 대답이 서슴없이 나왔다는 기록 역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진정한 영웅, 진정한 강자에게 “강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열정은 이순신 장군이 자기들의 조상을 완전히 수장시킨 사람이라는 사실마저도 잊게 만든 것입니다.
민족적인 감정을 초월하면서까지 적국의 영웅에게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일본인들의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일본인들을 수천 년의 야만인 신세에서 벗어나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국적도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고, 모든 공적이 너무나 뚜렷한 데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에 잠시 일본에서 근무했다는 지극히 사소한 이유 하나만으로 영웅을 영웅으로 존경하지 못하는, 참으로 기이한 일을 벌이고야 말았습니다.
세계사를 돌아다 보면, 세계에는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없는 영웅도 가짜로 만드는 일도 많은데, 정말 존경 받아야 할 영웅을 우리처럼 사소한 이유로 영웅 만들기를 포기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공군창군 60주년과 공군사관학교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서암
김정렬 장군의 업적에 대한 재조명과 동상 건립사업은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에 공군사관학교 1기생을 필두로 총동창회 회원과 현역 및 예비역 모두가 이 계획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이 계획을 시작으로 하여 공군 창군 및 발전에 관련된 많은 영웅담을 발굴하여 범 국민적으로 공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해 나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공군사관학교 1기생회
회장 최규순(예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