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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경교장 - 그 역사의 현장

배기준 2013.03.21 조회 129

 

누구나 역사의 현장 찾기를 좋아한다. 3월 19일 오후 경교장(京橋莊)에 갔다.

 

올해 3월 1일,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으로 복원하여 문을 열었다.(국가사적 제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으며 1949년 6월26일 백범 김구(73세)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그 날인지 아니면 며칠 후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산은 비와 바람이 몹씨 분 날, 어떤 위대한 분이

 

흉탄에 맞아 숨졌다고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기억이 또렸하다.

 

그 후 읽지는 못했으나 '백범일지'란 도서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둥근 안경태에 우리나라 전형적인 시골 사람, 기골이 강건한 육각형 안면이 우리 민족의 표본형

 

으로 친밀감이 갔다. 굽힘없는 당당한 모습과 카랑카랑한 언변은 그 당시 무지하여 방황하는

 

민족을 뭉치게 하였다. 사사롭지 않는 지도자였다. 평생을 나라 독립을 위해 싸우고 윤봉길,

 

이봉창의거를 지휘했던 행동하는 애국자중 보스였다. 해방 후 남북 통일국가를 건국하려 애썼던,

 

높이 날아 멀리 보는 혜안을 가진 거목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미생이 김구선생의 첫째

 

아들 김인의 부인이며 차남 김신(1922년생)은 전투조종사로 제 6 대 공군 참모총장이시다.

 

 

건물 안은 숙연했다. 차분한 중압감과 처연함이 방마다 가득했다. 수리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고한 나무기둥, 벽돌, 한지 냄새가 한층 더 분위기를 무겁게 고조시켰다. 36년간 굴욕에서

 

벗어나 어떻게 세운 나라인가! 그 분을 쓸어지게 하다니! 아, 후회스럽다. 소리없는 탄식은

 

지질이도 복이 없는 척박한 나라 운이 서러워서인가. 민족의 미래가 암울하여 절망에서인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정확히 1년 후에 6.25 전쟁이 터졌으니 생존하셨다면 우리나라

 

물 줄기는 어디로 흘러 갔을까?  그 고난 속에 상해 임시정부가 기틀이 되어 이 만큼한 나라가

 

세워졌지. 오만가지 어지러운 생각이 뒤엉켰다.

 

 

60-90년전 구 한말에서 독립기까지 천둥번개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가 가눌길

 

없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3월의 봄바람이 얼씨년

 

스럽지만은 않았다. 앞뜰 마당에서 백범 김구 선조가 계셔 자랑스럽다는 민족 자존심이 머리에

 

어깨에 가슴에 도도히 몰려왔다. 바로 민족혼이 거기에 있었다. 뒤를 돌아보며 

 

"다시 오겠습니다. 백범 김구 주석님 ! "  그 분은 영원히 죽지않고 우리곁에 숨쉬고 있었다.

 

 

* 한번 시간내어 관람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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