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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그들과 함께한 시간2

고준기 2013.03.22 조회 117

 

 

남겨진 그들과 함께한 시간 2

 

 

2012년 2월 7일

 

늦겨울 찬바람에 아직은 몸이 움츠려드는 날씨에 오랜만에 부산행

 

KTX 기차를 탄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서 서울에서 출발한 곽병창

 

동기생과 합류하여 동백섬, 부산갈매기 등등을 생각하며 기차타는 동

 

안 여행의 기분을 잠시 느끼며 창밖의 겨울을 감상한다.

 

 

지난 1월 대전에서 동기생 유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상훈 동

 

기생 가족과 만나기 위해 부산에 내려가는 길이다. 김상훈 동기생 가

 

족을 생각하면 동기생 유가족중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다. 상훈이는

 

내가 동기생 회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순직한 동기생이었고, 박정수

 

동기생에 이어 두 번째 순직한 동기생이지만, 아내와 딸을 남기고 먼

 

저 갔다. 상훈이 영결식장에서 내가 말했던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분신같은 아이들은 공군과 우리가 책임...” 조사문구를 또한번 떠올

 

리며 부산역에서 만나기로한 상훈이 가족과 딸이 지내왔을 시간을 생

 

각한다.

 

 

벌써 9년이 흘렀다. 2003년 예천의 영결식장에서, 대전 현충원에서

 

안장식이후 연락도 만남도 처음이다. 딸 주은이는 한번도 보지 못했

 

다. 상훈이가 떠날 때 주은이가 태어난지 몇 개월 되지 않았었다고 들

 

었다.

 

부산역에 도착했다. 상훈이 가족과 통화후 만나기로한 장소로 걸어가

 

는 중 병창이와 저앞에 있는 어느 평범한 30대 중반의 여성을 보며,

 

“맞는거 같다”를 중얼거리며, 9년만에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9년만

 

에 얼굴을 보며,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미안함, 안도의 한숨, 궁금함

 

등등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줘서 해운대에서 점심식사 하기 위해 이동하

 

며, 근황을 물어본다. 한번도 보지 못한 주은이를 보고 싶었는데, 사

 

정이 있어 데려오지 못했단다. 해운대의 바닷가가 보이는 식당에 앉

 

아 점심을 하면서 그간의 얘기들을 시작한다.

 

 

다물후원회의 이야기, 지난달 대전모임, 그간의 근황들...

 

상훈이 가족은 2년전쯤 재혼했다. 여기 오기전 알고는 있었다. 지금

 

은 창원에서 재혼한 남편과 함께 남편의 딸 한명과 상훈이 딸 주은이

 

와 재혼해서 낳은 아이와 5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2년전 현충일 즈음에 현충원 상훈이 묘비에서 상훈이의 외삼촌을 만

 

난적이 있다. 상훈이 묘비 앞에서 50대 후반의 중년의 부부가 한참동

 

안을 기도하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상훈이 외삼촌이었다. 그때까지도 상훈이 가족에게 연락을 해본적이

 

없어서 근황을 물었더니, 잘 모르신다고 하시면서 명함을 건네주며,

 

상훈이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화가 왔고, 상훈이 가족이 좋은사람 만나 재혼했으니, 상훈이를

 

알던 사람들이 이제는 상훈이 가족을 잊어달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있

 

으셨다고 하셨다. 재혼을 해서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뭔지 모를 아

 

쉬움도 들고, 다물후원회 추진하는 과정중에는 일부 동기생들이 대상

 

에서 제외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듣고 했다. 그후 다물후원회를

 

준비하기까지 상훈이 가족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어머님 말씀대로 정말 연락을 안해야 하는건가 등등의 고민...

 

 

2시간 넘게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11년의 시간들을 듣게 되었

 

다.

 

상훈이를 처음만나 떠나보내기까지 2년의 시간, 그리고 지금까지 9년

 

의 시간들.

 

2001년 여름즈음, 지인의 소개로 상훈이를 처음만나 결혼하기까지 6

 

개월 연애기간 동안의 상훈이에 대한 기억들, 주말마다 예천과 부산

 

을 오가며 연애하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 결혼하자던 상훈이, 장인어

 

른이 너무나도 좋아했다던 상훈이의 얘기를 하는 지선씨의 얼굴은 지

 

난 순간 행복했던 기억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훈이를 처음만나 떠나보내기까지 2년의 시간, 너무도 행복했던 시

 

간들은 그후 한참동안 삶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주은이와 함께 부산

 

의 친정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방황했던 시간들을 얘기하는 동안의 얼

 

굴은 다시 현실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상훈이를 떠나보내고 삶의 목

 

적을 망각하며, 딸 주은이를 잘 보살피지도 못했고, 해운대 바닷가를

 

아무생각없이 걸어다니며 방황했던 시간들을 얘기할때는 방금전까지

 

밝게 웃던 얼굴의 두눈에 눈물이 가득차 있었다.

 

 

재혼한 지금의 남편은 2년전쯤 다니는 교회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게 되었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 창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재혼을

 

하게 되어 본인은 자격이 되지않아 유족연금으로 받던 연금은 주은이

 

가 성년이 되기전까지만 주은이 이름으로 받는다고 한다. 주은이 앞

 

으로 나오는 연금은 쓰지 않고 주은이 통장을 만들어서 적립하고 있

 

고, 나중에 주은이에게 주자고 지금의 남편과 상의하여 결정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남편과 시댁에 대해서 얘기를 듣던중 남편이 했다던 말이 기

 

억에 남는다. 주은이가 아빠(상훈이)를 기억하면서 살게 해주고 싶다

 

고, 그리고 주은이 아빠 동기생들이 창원에 올 기회가 되면 같이 만나

 

서 식사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고마웠다. 정말 말이라도 고마

 

웠다.

 

늦겨울 해운대 바닷가를 바라보며 저멀리 바람을 타고 날고 있는 갈

 

매기들의 날개짓으로 움찔거리고 있는 마음을 다독거려본다.

 

 

주은이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9년만에 만나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

 

다.

 

오늘에서야 상훈에에게 빚진듯한 마음을 조금 덜게 된다.

 

다시 바래다주겠다는 지선씨를 만류하며,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

 

했다.

 

상훈이를 떠나보내고 가슴아팠던 시간만큼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기

 

를 바라며, 주은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커가기를 바란다. 아빠를 기

 

억하기를 바라며...

 

 

 

남겨진 그들과 함께한 시간 3

 

*** 다음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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