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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배기준 2014.01.12 조회 427

 

 * 공사 12기생은 올해 임관 50주년을 맞아 생도 시절을 포함 그간의 추억담을 동기생 카페에

    싣고 있다. 거기에 기고한 글이다.

 

# 사람이 땅에서 살라는 생활 터전을 무시하고 하늘 공중으로 나른다면

   마땅히 생존 기회가 줄어질 것이다. 바로 죽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항공기의 연료는 생명체의 피(혈액)와 같다. 몸에 피를 다 쏟았다면 

   곧 죽는것 처럼 항공기가 비행할때 연료가 없으면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완전 시각장애자는 운전을 할 수가 없다. 누가 도로 상태를 읽고 말로

   길을 안내를 하면 갈 수는 있으나 그 소리마저 들을 수없는 청각장애자

   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이러한 악 조건이 겹쳐 사선을 넘은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배기준

 

 

소령 때, 요기(분대장급)를 달고 강경과 이리 상공에서 사진 정찰 비행임무를 수행하다가 중단하고 모기지 수원으로 귀환을 서둘렀다.

비행 전 기상예보와는 달리 바다 안개가 갑자기 몰려와 시정이 악화되어

비상주파수(G channel)로 기상귀환(weather recall)이 발령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요기와 통화는 가능하나 장거리 무전이 되지 않아 요기와 위치 교대 (position change)를 하고 계기접근 허가(IFR clearance)를 기다렸지만 웬일인지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연료는 줄어만 가고 있었다. 지상의 자동차나 해상의 배는 마침내 연료 부족으로 엔진이 꺼진다한들 큰 문제는 없지만 공중을 나르는 항공기는 치명적이다.


모든 비행 작전과 안전에 책임자로 더 기달릴 수 없어 마침내 허가없이 구름속으로 내려 가라고 위법 명령을 하였다. 마지막 접근에서 운좋게 계기정밀접근( PA R )으로 최저고도(deciegen hight)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활주로는 보이지 않고 비가 쏟아지는 구름 속이었다.

 

“야! 군산으로 가자! 구름위로 올라 가!” 방향을 잡고 예비기지로 가는 중지점에서 최저연료경고등(low fuel warning light)이 들어왔다. 앞으로 숨은 차고 갈 길은 먼데 몇 분밖에 비행할 수 없는 연료다. 비행규정으로 따진다면 계기비행으로 전환하여 구름을 뚫고 착륙하여야 하나 연료가 문제였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매우 빨리 결심(as soon as possible)을 해야했다.


새들처럼 특별한 감각도 없는 항공기가 어떤 레이다의 도움도 없이 막무가내로 구름뚫고 내려가 착륙하는 방법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위반한, 극히 위험한 비행이다. 언제 공중이나 지상 장애물과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더 중요한 연료 비상이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는 가장 덜 위험한 비행이었으며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생존방법이었다.

 

눈으로 볼수도, 소리로 안내 무전도 없이 무조건 돌격대처럼 구름속으로 들어가라고 또 한번 명령하였다. 위험을 직감하고 탈출하는 동물들의 생존감각처럼 이 모든 결심과정이 가장 원시적인 동물적 본능에 따라 전광석화처럼 선택되어졌다. 군산예비기지는 바다에 근접하여 지상 장애물이 낮다는 요행을 바라며 고도를 서서히 강하하였다. 거기 기상도 급속도로 나빠져 700피트(약 213m) 바다 상공에서 구름이 거치면서 활주로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무언가 퉁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 갈증 같은 것이었는데 사실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무거운 고독으로 부터 안전 범위로 진입하는 안도감이었다. 이 날 착륙의 의미는 평소와는 좀 달랐다. 무리수를 두어 지름길로 왔는데도 하마트면 활주로 도착을 놓칠뻔한 아찔한 긴장의 순간 순간을 지나  대지의 품에 안길 때 그 따뜻한 체감이었다.

(착륙후에 안 사실이지만 군산 기지 지휘관 111전투비행대대장(5기생 문상진 중령)은 기상악화로 군산귀환착륙을 만류, 고시하였는데 착륙한 우리를 보고 간 큰짓했다며 우려 반 다행 반. 대견하여 기뻐했다.)


오후에 모기지로 돌아와, 비행규정과 절차를 지키지 않아서 위험한 비행을 한 대가로 근신의 벌을 받았다. 비록 퇴근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만족하고 이상 가벼울 수가 없었다. 비록 규정을 위반하여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나 탁상공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규칙이전의 문제, 현장 당사자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근원적인 심정을 말 하지 않았다. 제3자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오랜 비행생활에서 얻은 머뭇거리지 않는 판단,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조종사의 근성과 사람으로써는 어쩔 수없는 시공(時空)의 운명이 우리를 관대하게 살려 준 용서. 그래서 이렇게 우리들의 기지로 돌아왔다(Return to Base) 는 희열 그리고 사선을 넘은 처절하지만 귀한 경험. 이런 것이 너무나 소중했때문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조종사들의 삶은 보다 솔직하며 단순하고 현실적이다. 이 명쾌함은 하늘을 날 때 그곳에는 오직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며 그곳의 생명은 죽음에 너무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최선이며 가장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끝]

 

※ 참고 : 당일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 나의 요기로 1번기 위치에서 모기지 

             접근후 예비 기지 군산에 안착 시킨 조종사는 분대장 16기생

             김익래 대위다. 

 

             "김대위, 그 비행은 정말 통쾌한 well done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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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희룡 2014/01/13 13:26:49
    즉각 결심 하신 덕분에 무사했는데, 근신을 때리다니 이해되지 않습니다. 공군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계기접근 허가를 내주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겐가 물어야 하는데, 가끔 이런 안타까운 일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선, 생과 사의 문제에서 남다른 경험을 하셨으니, 더 보람된 인생을 사신다고 생각됩니다. 김익래 선배님, 아무리 둔한 학생도 조종사로 성공시켜 주는 교관이라고 소문이 났던 분이었지요. 그런 교관님의 학생이 되었다고, 넌 수료까지 갈거다..라고 동기생들이 격려해 주었는데, 김 선배님의 제자중 중도 탈락한 첫번째 학생이 되고 말았습니다.절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벌써 40년이 흘렀군요. 탈락 통고를 받았을 때의 절망감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가끔,. 당시 (T-28) 파워 온 스톨을 가르쳐 주면서 막 화내신 교관님(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맘이 들때도 있었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 배기준 2014/01/13 23:33:36
    변군, 그때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교수에 박사는 못되었을 것입니다.김익래 대위는 16기 수석으로 입교한 후배인데 본인이 T-28 담당교관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가정 : 변군의 사정을 알았다면 본인이 김대위에게 압력을 가해 수료시키라고 ORDER했을텐데, 교관의 교관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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