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논단

해군 항공기로 산악지방에 어뢰공격 -한국전쟁시

변희룡 2016.11.14 조회 710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8&num=4860

 

위 기사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수년전 저기 파로호를 방문하여 노 안내인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625를 직접 겪은 분이었습니다.

 

미군이 폭격을 하여 대공포화를 잠재우고 다음 날 와보면 또 대공포대가 새까맣게 올라와 있더랍니다.  대공포대가 무서워 미군은 저공비행을 하지 않으려 하니 명중률은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당시 활약하던 켈로 부대(군번없는 첩보부대)에서는 강제로 어린애 노인 할 것없이 중공군 주둔지로 잠입 시켰답니다. 안간다고 하면 빨갱이로 몰아 죽여 버렸으니, 전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노인은 설명했습니다. 잠입한 사람이 돌아오면 주기로 되어 있는 상금은 자꾸 쌓여 갔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안나오니까. 아니 못나오고 죽었으니까.

 

그런데 한 노인이 멀찌감치서 살피다가 좋은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중공군들이 나무를 베어 검은 페인터 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페인터 칠한 나무토막,  이것을 숨겨 두었다가,. 미국 폭격이 지나가면 세워서 대공포대로 위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워 미군의 폭격은 항상 지지부진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금방 보고되어 즉각 작전에 반영되었습니다. 한미연합 육군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 공격을 했는데 중공군 사망자가 이 한 전투에서 5만에 이러렀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호를 파로호라 이름짓고 지금도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지역을 수복함으로서, 화천수력발전으로 당시 고질적이었던 전기를 확보하여 그 나마 서울이 암흑의 도시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38선에서 강원도 쪽이 더 북쪽인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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